사회 이슈

현대차 부진 이유

insight_knowledge 2018. 11. 1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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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가속 페달을 밟던 현대자동차 그룹이 멈춰섰다. 한때 800만대를 훌쩍 넘겼던 판매량은 올해 목표량인 755만대 채우기도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두 자릿수를 기록했던 영업이익률은 올 3분기 1.2%까지 떨어졌다. 1000원어치 물건을 팔아 12원의 이윤을 남긴 셈이다. 신용평가사들은 현대차와 그룹 계열사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하향 조정했다. 현대차가 추락하면서 협력사와 자동차 부품업계도 휘청거리고 있다.

품질 저하로 인한 신뢰 붕괴가 원인 현대차가 위기를 맞자 노동자들이 그 ‘주범’으로 지목됐다. 보수언론 등은 연일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잦은 파업으로 현대차를 망가트렸다며 ‘고비용 저효율’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 위기의 근간에는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을 무색케 하는 잇따른 자동차 결함 문제와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경영진의 실책이 더 큰 몫을 차지한다.

“자동차는 우선 고장이 없어야 한다. 고장이 적은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연초 시무식에서 꺼내는 단골 멘트다. 1999년 회장 취임 이후 정 회장은 지금껏 자동차의 ‘품질’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정 회장의 바람과 달랐다. 2015년부터 세타2 엔진과 GDI 엔진, 에어백 등 주요 부품에서 잇따라 결함이 발견됐고 대규모 리콜이 이어졌다. ​반복되는 ‘불량’ 판정에 현대차 품질에 대한 신뢰에도 금이 갔다.

미국 비영리 자동차 소비자단체인 CAS는 지난 6월 현대 싼타페와 쏘나타, 기아 옵티마와 소렌토 등 4개 차종이 엔진 결함으로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며 미 도로교통안전국에 결함조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 6월 이후 103건의 현대·기아차에서 불이 났다며 약 300만대를 즉각 리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내 소비자 민원이 이어지면서 미국 상원 상무위원회는 현대·기아차의 미국 법인 최고경영진에게 다음달 열리는 청문회에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

미국에서 현대·기아차 결함 문제가 불거지면서 제네시스를 앞세운 현지 고급화 전략도 설자리를 잃었다. 품질에 승부를 걸고 비싼 값을 받고 팔겠다는 전략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8.1%(2016년 기준)에서 올해 7.5%로 떨어지는 동안 도요타와 혼다 등 일본 자동차업체의 점유율은 반등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현대차 제네시스 대신 비슷한 가격대의 도요타 렉서스를 택하거나 쏘나타의 경쟁 차종인 캠리를 택한 결과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네시스가 1위를 차지했다는 미국 신차 품질조사는 시장조사업체에서 집계한 결과일 뿐”이라며 “소비자를 상대로 한 컨슈머 리포트에서는 20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위원은 이어 “제네시스급 세단에 대한 수요는 일본 회사가 가져갔다”고 덧붙였다.

​불량 자동차로 인한 피해는 브랜드 이미지 하락과 판매량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결함에 따른 막대한 리콜·수리비용 증가는 실적 악화를 부른다. 현대·기아차는 올 3분기에 리콜 등으로 7800억원을 지출했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3분기 현대차 실적쇼크의 주요 원인은 5000억원의 품질 관련 비용이 일회성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라며 “리콜의 대규모화로 리콜 비용에 의한 이익 변동폭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품질경영을 내세운 현대·기아차가 ‘불량’에 발목을 잡힌 이유 중 하나로 비용 절감을 위해 벌이는 이른바 ‘하청업체 쥐어짜기’가 지목된다. 적은 납품가 내에서 이윤을 남겨야 하는 부품 제작 협력업체들은 기술개발은커녕 결함이 발생해도 개선할 여력이 없다.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는 “협력업체를 양질의 부품을 납품하는 파트너로 보고 있지 않다”며 “단순히 이윤을 늘려주는 하청업체로 보는 후진적인 시스템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 동안 현대차의 연평균 영업이익률은 8.2%, 현대차 계열사는 8.3%인 반면, 전속거래를 하는 현대차 협력사 350여곳은 3.6%에 불과하다. 더 영세한 규모의 2차 협력사들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10조 한전부지’ 선택은 옳았나 정몽구 회장이 평소 품질만큼 강조한 부문은 연구개발(R&D)이다. 정 회장은 지난 2014년 신년사를 통해 “친환경 그린카와 첨단기술이 융합된 스마트카 같은 혁신기술 개발분야에 대한 투자를 크게 확대해야 한다”며 연구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17년 기준 현대자동차의 투자비용은 17억6000만 유로(약 2조2400억원)다. 도요타(75억 유로·9조5600억원), 다임러(75억4000만 유로·9조6100억원), GM(76억8000만 유로·9조790억원)등 ​주요 회사들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용을 계산한 ‘연구개발 집약도’는 2.4%로 경쟁사는 물론 매출액이 현대차의 절반 수준인 인도 타타모터스(4.11%)보다도 낮았다.

그렇다고 기술력을 가진 업체를 인수하거나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큰 돈을 쓴 것도 아니었다. 정 회장이 이 같은 투자 대신 선택한 것은 신사옥을 지을 10조원짜리 강남 한전부지였다.

경영진의 무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대표적인 게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이다. 산업연구원의 ‘중국 자동차산업의 혁신전략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기아차가 중국 시장에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가운데 경쟁관계에 있는 도요타와 닛산은 두드러진 약진을 이어가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중국 시장 판매 부진은 신에너지·자율주행 등 기술 적용에 민감한 중국 소비자들의 기호를 따라가지 못한 데 있다고 분석했다. 요컨대 중국 자동차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독일·일본보다 기술력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다 보니 시장 안착에 실패한 것이다. 가격정책이나 상품전략이 빗나가면서 현대차의 중국 내 시장점유율은 2009년 6.9%에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연간 2500만대의 중국 시장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룹 내 리더십의 부재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정몽구 회장이 건강 악화로 사실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기업의 체질개선을 이끌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일명 ‘소나타 신화’를 만든 과거의 주역들은 여전히 내연기관과 수소연료전지자동차를 미래 먹거리로 밀고 있다”며 “반면 그룹 내 젊은 직원들은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를 추구하면서 내부 파벌 싸움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내부에서 여전히 확실한 결론을 못내고 승용차는 전기차가 맞고, 트럭과 버스는 수소차가 맞다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린 상태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는 “전략적으로 한 방향의 목표를 추진하고 기업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가 없다는 것이 현대차의 가장 큰 딜레마”라고 말했다.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노동자들을 향한 비판도 합당한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차 노동비용은 2015년 이후 6조3000억원 수준을 유지해 왔고, 올해 7월부터는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현재 위기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경영진은 아무도 없다”며 “예전 경쟁사 리콜 사태로 반사이익을 얻은 덕에 실적이 잘 나왔을 때는 경영진 치적이라더니 회사가 어려워지니까 노동자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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