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엠(GM)이 ‘나홀로 주주총회’까지 무릅쓰며 강행하던 한국지엠 법인분리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2대주주인 케이디비(KDB)산업은행의 주총 비토권(거부권)을 일차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법인분리에 ‘물적분할’ 방식을 쓸 경우 비토권 예외 대상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향후 사태 전개가 주목된다. 지엠이 글로벌 차원에서 강력한 구조조정과 미래차 위주 사업재편 방침을 발표한 터여서, 법인분리를 포함한 한국지엠 재편도 시간 문제일뿐 재추진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8일 서울고법 민사40부(재판장 배기열)는 한국지엠을 연구·개발(R&D)법인과 생산법인으로 쪼개는 ‘분할계획서 주총 승인’의 효력을 정지하고 집행을 막아달라는 산은의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산은이 한국지엠을 위해 담보로 10억원을 공탁하는 등의 조건으로 지난달 19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한 분할계획서 승인 건 결의의 효력을 정지한다”며 “한국지엠은 결의를 집행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30일 법인분리 단행을 목전에 두고 계획에 제동이 걸린 한국지엠은 유감을 표명하고, 재항고할 뜻을 밝혔다.
법원은 한국지엠이 추진하던 ‘인적분할’을 통한 법인분리는 지엠 쪽 주장과 달리 17.02% 지분을 보유한 산은의 비토권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보통주 총수의 85%의 찬성을 얻지 못한 채 이뤄진 이 사건 결의는 정관 규정(비토권 규정)을 위반한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산은은 소수주주의 경영견제 장치로 정관에 따로 규정한 17가지 주총 특별결의 사항에 대해선 15%의 지분만으로도 비토권 행사를 보장받았다. 이번에 쟁점이 된 정관은 ‘회사의 흡수합병, 신설합병, 기타 회사의 조직개편’을 비토권 대상으로 규정한 대목이다. 산은은 법인분리도 조직개편에 들어간다고 보아 비토권을 주장했고, 지엠 쪽은 ‘회사의 실질적 지분상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합병이나 기타 이와 유사한 행위는 (비토권 대상에서) 제외’라는 단서 조항을 들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1심에선 지엠 논리에 손을 들어주었으나, 2심에선 산은 주장을 수용해 엇갈린 판단을 내렸다.
다만 2심 재판부가 인적분할은 비토권 대상이지만, 물적분할은 비토권 대상이 되지 않을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점은 향후 사태 전개를 예측불허로 만든다. 재판부는 “물적분할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중략) 정관 규정에 따른 초다수 특별결의(비토권)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물적분할은 기업이 특정 사업부를 떼 기존 법인의 완전 자회사로 만드는 방식으로, 추후 사업부 매각이 필요할 때 많이 쓴다. 이는 기존 주주 지분에 변동을 초래하지 않는 점은 확실하지만, 한국지엠이 향후 생산법인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연구·개발 법인을 독립적으로 유지할 목적이라면 인적분할만큼 문제를 쉽게 풀어주진 못한다.
인적분할이란 법인의 자산을 둘로 쪼개어 독립적 신설법인을 만든 뒤 기존 주주들이 새 법인의 주식을 현 지분 비율대로 나눠 갖는 방식으로, 한국지엠은 신설법인에서도 주주 구성비가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 기대어 법인분리를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인적분할의 경우 쪼개진 두 법인의 지분가치를 합산해 산술적으론 기존과 같다고 해도 신설법인의 독립성 탓에 주주권의 질적 변화가 초래된다는 점을 들어 실질적 지분상황에 영향이 있다고 보았다.
산은 관계자는 “물적분할 시나리오는 내부적으로 검토가 안 돼 신중하게 짚어보는 중”이라며 “법인분리를 일단 막았지만, 지엠이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지엠은 “앞으로도 (연구개발 신설법인인)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 설립을 통해 회사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법원이 인적분할에 제동을 걸어 시간은 잠시 벌었지만, 지엠은 법인 분할을 위한 여러 시나리오가 있을 것”이라며 “지엠이 트럼프 정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자국 내 공장 구조조정을 26일 발표한 것처럼 국내 창원공장 등 생산성이 낮은 국외 공장 구조조정은 각국 사정에 따라 순서만 조정되는 것이지 언제든 가시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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